2025년 9월 19일 금요일

텔레그램 대화방에 안읽은대화❶가 사라지지 않을 때

텔레그램 메신저에서 분명히 다 읽은 대화인데도 안읽은 대화❶이 사라지지 않거나 갑자기 생기는 경우가 있다. 방금 겪은 일이다. 마지막 대화가 올해 1월이고 그 당시 다 대화를 읽었고 이후로 여덟달이 지났는데 갑자기 방에 ❶ 표시가 생겼다. 아이폰의 텔레그램에만 이 표시가 생겼고 맥에는 뜨지 않았다. 아이폰에서 해당 채팅방을 열어봐도 새로운 대화는 없었다. 혹시나 동기화에 문제가 있나 싶어 앱 재실행, 와이파이 끊었다 재 연결을 해봐도 마찬가지였다.

해결책은 대화방 목록에서 해당 대화방 제목을 오른쪽으로 밀어서 나오는 "Read" 버튼을 눌러 모두 읽은 상태로 만드는 것. 희한한 것은 이걸 하고나니 곧바로 맥의 텔레그램에서도 같은 방에 ❶ 표시가 생겼고 같은 방법으로 문제 해결. 뜬금없네.

2025년 9월 6일 토요일

2년만에 라이트세일 새 인스턴스로 이사

얼추 2년 3개월정도 사용했던 라이트세일 인스턴스에서 새 인스턴스로 이사했다.

예전에 적어둔 과정대로 따라했는데 이번엔 살짝 스텝이 꼬이는 과정이 있었다.

처음 워드프레스 블루프린트를 설치한 후 워드프레스 로그인을 했는데 관리자 화면이 아닌 빈 화면만 나왔다. 임의의 게시물 퍼머링크 하나를 찾아들어가 게시물 본문 아래에 있는 편집(edit)링크를 통해 워드프레스 대쉬보드로 들어갔다.

두번째, updraftPlus 플러그인부터 설치해서 복원을 시도. 구글드라이브로 백업했던 DB와 테마 들은 잘 복원 됐는데 첨부파일과 이미지는 제대로 전송하질 못했다. 할 수 없이 백업 파일들을 로컬PC로 다운받았다. 다시 새 서버에 올리고 게시물들을 열어보다보니 이미지 파일이 깨진 게시물들이 보였다. 확인해보니 이미지 경로가  "http://새서버_IP/이미지경로"로 되어 있어서 Better Search Replace 로 http://새서버_IP부분을 모두 삭제처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지가 깨진 게시물들 발견. 구 서버에는 있고 새 서버에는 그 이미지 파일이 없었다. 이때부터 삽질이 시작됐는데...

최초 짐작은 updraftPlus 가 백업했을 때 일부 파일이 누락된 것으로 생각해서 구 서버에서 새 서버로 직접 파일을 날려보내기로 했다.

신 서버에서 입력할 명령은,

scp -i /home/bitnami/기존서버pem파일 -r bitnami@구서버IP:/var/www/html/wp-content/uploads/ /opt/bitnami/wo
rdpresshttps://img.hof.pe.kr/

새 서버에 구 서버의 SSH 키파일인 pem을 어찌 올릴 것인가. 두 서버의 pem 파일은 라이트세일 인스턴스 페이지에서 다운로드. 파일질라를 설치해서 신서버에 대한 sftp 접속정보를 등록해서 접속, 파일을 업로드 했다. scp 파일 전송은 이번에 처음(...)인데, 약 7천개 파일, 450MB 정도 전송에 30초쯤 걸렸다.

전송 후 게시물들 확인해보니 다행이도 제대로 이미지들이 표시됐다. 문제는, 앞으로는 어떻게 백업할 것인가이다. DB는 기존처럼 updraftPlus로 백업받고 첨부파일은 NAS에서 스케쥴러에 사용자 지정 스크립트로 scp 명령을 실행하도록 하려고 했.....으나 파일과 DB 두개를 전혀 다른 경로로 따로 백업 작업을 진행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었다. 다시 한번 살펴보자. 과연 updraftPlus가 오류를 냈을까 싶어서 처음부터 과정을 검토했다. 결론은 로컬로 수동 다운받은 구글드라이브 백업 16개 파일 중 2개 파일을 다운받지 않은 것이다.구글 드라이브의 웹UI 상으로 하나씩 클릭해서 선택하다가 빠뜨린듯.

그대로 updraftPlus 백업을 유지하기로 하되, 구글드라이브 용량이 부족하니 그동안 방치해놓고 쓰지 않는 드롭박스로 겸사겸사 이번 기회에 백업 저장소를 옮겼다.

아파치는 2.4.57→2.4.63, PHP는 8.1.18 → 8.2.28, MariaDB는 10.11.2→11.8.2 업그레이드 됐다.

2025년 9월 2일 화요일

간만의 번호이동 (feat. eSIM)

얼추 2년쯤 썼던 알뜰폰에서 간만에 번호이동을 했다. 이통사를 갈아탈 때 가장 큰 걸림돌은, 기존 폰 가입이 해지되고 새 폰 정보가이 활성화 되는 과정에서 USIM이 교체되는 과정이었다. 물리적으로 배송되는 1박 2일동안, 먼저 개통해서 오면 기존 폰이 그 기간동안 먹통이되고 후 개통이면 유심 두개를 넣고 빼고 하다가 뭔가 오류가나면 그때도 몇십분씩 음성,통화,셀룰러 데이터를 사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곤 한다. 그럴 때 이통사 고객센터에 전화를 할 방법이 없어서 난감한 상황에 처하곤 했는데. 이런 이유로 알뜰폰 갈아타기를 할때마다 문제없이 잘 개통될지 불안한 마음에 긴장하면서 개통 절차를 진행했었다.

저번 번호이동이 조건도 좋고 기간 제한도 없는지라 정착하려 했으나(...) 이번에도 워낙 조건이 좋기에 변심하기로 했고 처음으로 eSIM개통을 해 보았다. 2천여원의 eSIM개통비가 들었고 화면에 뜬 QR코드를 비추니.. 어라? 1분도 안되어 개통이 완료가 됐다. 기존 이통사 해지를 확인하는 문자가 새 이통사 개통 요구보다 늦게 오는 바람에 한번 꼬였던 일 빼고는 초스피드로 번호이동이 가능했다. 유심칩 배송받는 번호이동의 난도를 10이라고 치면, eSIM 방식은 1미만의 스트레스다.

KT향 7기가 + 무제한 통화,문자 + 이북 구독서비스 16900원 → SKT향 20기가 + 500분 + 100개 = 8900원으로 이동 완료.

이제는 없는, 추억 속 음식

어렸을 때 할머니는 서해안 대부도에 사셨다. 초등학교 방학식을 하면 그 다음날 바리바리 방학숙제와 그 달치 만화잡지, 프라모델을 싸놓고 다음날 첫 배로 대부도로 갔는데. 지금에야 대부도까지 시화방조제가 놓였고 제부도로 해서도 차로 바로 갈 수 있었는데 예전에는 연안부두에서 배를 타고 가거나 선감도를 통해서 작은 배를 타고 들어가야 했다. 대부도 가는 날 새벽에 어머니가 깨우면 말 그대로 스프링처럼 벌떡 일어나서 갈 준비를 했다. 신났다는 얘기다. 대충 눈꼽 떼고 지금으로 치면 구로구 개봉동 입구까지 걸어나온 후 인천 연안부두까지 가는 버스를 타야했다. 연안부두에 도착해서 뱃시간까지 기다리면서 대충 요기를 해야했는데 그때 먹었던 것이 역앞 광장 손수레에서 파는 순두부였다. 들통에 담아온 순두부를 두어국자 떠서 국사발에 담고 양념간장을 끼얹어주면 그때 의자가 있었는지 그냥 서서 먹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새벽에 먹는 순두부는 어린 나이였어도 맛이 기가막혔다. 방학은 오늘부터 시작이고 나는 할머니댁에 간다는 즐거움에 순두부까지 먹고 있으니 오죽 행복했겠는가.

고추기름을 내고 쇠고기니 해물이나 잔뜩 넣고 계란한알 깨넣은 얼큰 순두부가 대세가 됐지만 지금도 가끔 시장에서 몽글몽글한 순두부를 발견하면 사다가 비슷하게 해먹곤 한다.

방학 내내 대부도에서 지내다보면 할머니가 해주시는 음식은 물론 동네 다른 집 음식도 먹어보곤 하는데 그때 맛있게 먹었던 것이 바지락 만두였다. 동네 할머니들은 진작에 별명들을 갖고 계셨다. 늘 입에 달고 사시던 두통약 이름을 딴 명랑할머니, 소를 키우셨던 소할머니, 우리 할머니는 인천에 살다 오셨다고 해서 인천할머니였다. 바지락만두는 소할머니가 만드시는 만두인데, 서해안 섬이라는 특성상 바지락이니 동죽이니 하는 조개류가 마을 앞 갯벌에 지천으로 널렸다. 들통 하나가득 조개찜,굴찜,소라찜을 해먹었고 낙지며 망둥이회도 심심찮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고기류를 구하기 어려운 섬마을이니 만두소에 넣을 대안으로 삼은 것이 조개류다. 바지락이었는지 동죽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고기만두나 김치만두처럼 만두소의 주 재료가 바지락이다. 국그릇에 하나만 담아도 꽉 차는 크기라 한두알만 먹어도 (=만두국 한두그릇과 동의어) 든든했다. 아마 그때도 잘먹었습니다 하고 인사를 드렸겠지만 전무후무하게 독특하고 맛있는 만두를 맛볼 수 있게 해주신데 대해 너무 늦었지만, 감사드린다.

더 이상 먹을 수 없는 음식 마지막으로 하나 더 꼽아보자면 우리 할머니가 해주시던 전 찌개^^;. 집들이 대개 그러하듯 명절이 되면 이러저러한 전들을 부치게 되고, 남은 전들은 냉동실로 간다. 이후에 뎁혀먹거나 전 찌개의 재료가 되는데. 어렸을 때는 왜 그렇게 전 찌개가 먹기 싫었나 모르겠다. 전은 좋지만 전 찌개는 잘 내키지가 않았다. 기름에 구운걸 얼큰한 탕으로 끓이니 튀김옷과 원 재료가 분리되고 부서지면서 이 덩어리가 동태전에서 나온 건지, 산적에서 나온건지, 동그랑땡에서 나온건지 알 수 없는 혼돈의 탕이 되는 것이 못마땅했나보다. 어쩌면 '어른들의 음식' 분류표에서 하수와 고수 분면에 놓았을 때 확고한 고수쪽의 음식이 아닐까 싶다. 전 찌개야말로 어디서 사먹었을 때 비슷한 맛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고, 할머니가 해주셨던 음식 중에서 제일 투덜거리고 먹었던 죄를 지은 음식이라는 점에서, 어디 가서 (이제 와서) 돈내고 사먹기가 내키지 않는 음식이기도 하다.